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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였던 94년 초에, 그때는 애들 사이에도 컴퓨터가 집에 있는 사람이 몇 안될때였다.
한 반에 45명 중 집에 PC가 있던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때는 경제가 안좋았다기 보다는 컴퓨터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때, 처음으로 집에 들어왔던 컴퓨터가 이것이다.

당시에 Hewlett-Packard는 국내에 프린터나 인쇄기기, 광학장비, 계측기 쪽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삼성전자의 그린컴퓨터, 매직스테이션이 TV광고 빵빵 때리면서 PC시장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에 Hewlett-Packard(HP)는 삼성전자와 합작법인으로 "삼성휴렛팩커드"로 국내에 법인이 있었다. HP는 삼성전자가 달리고 있던 PC시장에 추파를 던지는 셈으로 미국에서도 상당한 판매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 벡트라 브랜드를 국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 첫모델이 내가 처음 썼던 벡트라 VL 모델이다.
 
당시 벡트라 VL기종은 80486SX 25MHz가 탑재된 486/25VL, 486DX 33MHz가 탑재된 486/33VL, 486DX2 66MHz가 탑재된 486/66VL이 출시가 됬다. 내가 썼던 PC는 486/25VL이다.

이후 벡트라 VL2가 나왔을 때는 비슷한 라인업에 펜티엄 75/100 라인이 추가되기도 했다.
사진은 VL2의 사진인데, 내가 썼던 VL은 저 케이스에서 단지 좌측 라벨만 다르고 모두 똑같다.

당시 25MHz였던 486/25VL을 모니터 별도로 하여 99만원이라는 초특가로 판매했었는데, 메이커PC 1위를 달렸던 삼성 그린컴퓨터의 비슷한 사양보다 무려 50만원이 쌌고, 조립PC의 브랜드화, 고성능화, 저가화를 달렸던 뉴텍의 VESA Local Bus 컴퓨터보다도 20만원이 쌌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실정에는 매우 맞지 않는 컴퓨터였다.
보시다 시피 기본사양에는 3.5" FDD가 있다. 당시 우리나라의 PC에는 5.25" FDD가 기본 A: 드라이브로 설정되어 나오는게 대부분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3.5" 보다는 5.25"를 대세로 쓰던 시기였다. 번들로 주던 DOS나 윈도우 디스켓도 5.25"가 기본이었던 이때, 이 PC의 번들은 모두 3.5" 였던 것이다. 컴퓨터를 잘 몰랐던 나는 번들프로그램이 깨지거나 디스켓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당시 여의도에 있던 "삼성휴렛팩커드" A/S센터로 가서 새 디스켓으로 바꿔오던 시절이 있었다. 여의치 않으면 컴퓨터를 들고가서 다시 깔아달라고도 했다. 친절하게 대했던 당시에 HP의 A/S 시스템은 국민학생이었던 나에게도 커피를 한잔 주면서 기다리시라고 했던 최고의 A/S 시스템이었다.

키보드, 마우스도 많이 틀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키보드에 엔터키부터 확실히 틀리다. 우리나라는 뒤집어진 "L"자 형태의 Enter키를 사용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ㅡ"자형 엔터키를 사용한다. 키보드 마우스 잭도 달랐다. 당시 국내의 키보드 잭은 "AT"형이라고 하는 크고 동그란 형태의 키보드 잭을 사용했도 마우스도 Serial 방식의 마우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벡트라에 있던 키보드 마우스, 모두 현재의 형태인 PS/2를 사용했다.

내가 저 컴퓨터를 사고 1년 후에, 사운드카드가 보급화되고 MPEG카드가 나와서 VideoCD를 PC에서 재생이 되었다. 사운드카드를 사서 꽂았고 CD-ROM도 꽂았다. MPEG 카드를 꽂아야 되는데, 오버레이를 위해서 내장된 Feature Connector에 보드를 연결해야 하는데 잭이 암수가 반대로 되어 있었다. 또, 국내의 MPEG보드랑 규격이 틀려 동작도 안됬다. 골치 아픈 컴퓨터였다.

우연하게 중학교 1학년이 됬던 95년, AutoCAD를 배워볼 기회가 있었다.
AutoCAD를 설치하고 실행하려는데, 허걱! 프로그램 실행이 안된다.
Co-Processor(수치연산프로세서)가 없댄다.
그렇다, 486SX는 코프로세서가 없다. 486DX부터 그게 들어가 있다. 이런.....
PC통신을 통해 당시에는 고가로 느껴졌던 5만원씩이나 주고서 486DX2 66MHz CPU를 사갖고 와서 보드에 있는 오버드라이브 소켓에 꽂았다. 그러니 겨우 AutoCAD도 되고 3D Studio(지금의 3D Max의 전신)도 된다.

내가 사용했던 첫 컴퓨터, HP Vectra VL.
94년 초에 구입해서, 97년 초 Pentium 100MHz의 PC로 교체하기 전까지 썼고, 98년 여름에 폐기처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