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1NMA Blog

땜쟁이한테 DTP가 어울릴까요?
박상보  2009-12-02 22:14:23  |  조회 : 26

안녕하세요.
케먹을 자주 들러다 보면서 이런 게시판도 있네 하고서는
저도 한번 제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저는 10년이 넘도록 "땜쟁이"라는 딱지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년 전에 라디오와 인두기를 만지기 시작해서
초등학교 4학년때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전자계산기 전공의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기능대학과 4년제 대학을 모두 정보통신을 전공해왔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회로와 인두기, 그리고 컴퓨터를 만지면서 살아왔지요.
기능대학을 들어갔던 21살에 컴퓨터 판매/수리점을 내서 3년간 했었고, 4년제 대학을 편입하여 졸업하고서는 같은 학과의 조교로 2년을 근무했지요. 조교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주로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대한 지도를 주업으로 하다보니 회로와 인두기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학과의 고장난 것들은 주로 제 손에서 FIX되었구요. 직업에서도 인두기를 손에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즉 속칭 "땜쟁이"에 속하는 저였지요.

작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올해 초부터 전자회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만드는게 무선기기 악세사리 키트나 자동차의 전자기기 관련 KIT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땜쟁이"지요. DTP와는 전혀 관계 없는 직업들이지요.

주로 컴퓨터를 만지면 IBM을 만지게 됩니다. 컴퓨터 수리 일을 할때는 유저가 거의 윈도우 사용자다 보니 IBM을 만지게 되었구요, 학교 조교로 근무하면서도 교육용 PC들은 모두 IBM 입니다. MAC은 만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전자회로 개발 일을 하면서도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파일용으로도 할 수 없이 IBM을 쓰고, 회로 설계나 PCB설계를 하는데에도 IBM의 OrCAD를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키트에 사용되는 외부프로그램에도 Visual C++을 사용해야 하니 할 수 없이 IBM입니다.

그런데도, 항상 MAC이 제 옆에 존재하게 됩니다.

5년 전인 2004년, 컴퓨터 매장을 하다가 말아먹고 편입시즌을 기다리며 집에서 놀던 때였습니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알게된 분께서 경영하시는 산업기기 잡지사에 기자일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구할 동안까지 일을 해주기로 하고 취재도 다니고 자료도 수집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는 DTP를 하기에 MAC을 사용했는데, 저는 당시에 MAC도 모르고 Quark도 모르니 아래아한글로 대충 짜서 주면 편집자가 알아서 편집을 해 냈지요.
몇 달을 하다 보니, 편집자한테 괜히 미안해지니 스스로 MAC을 한대 사고 MAC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청계천 중고시장에서 PowerMac 9600/200을 하나 업어왔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구해서 프로그램 까는것부터 Quark을 다루는법도 배워서 스스로 작업을 해서 넘겼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사무실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DTP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무실에서는 새 사람을 구할려는 모습이 사라져 보였습니다. 이거 참.. 핑계댈만한 거리도 없고 아는 사람이 사장님이다 보니 말도 못하겠고 해서. .그냥 아무말 없이 매달 쭈욱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지방에 대학을 편입하면서 서울을 떠나게 되었고, 그 일은 지방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학생이어서 딱히 수입이 없던 차에 다행이었지요. 매달 일주일 정도를 자료수집하여 기사를 편집하여 웹하드로 넘겨주고 매달 따박따박 50만원씩 받아왔지요. 그 50만원 덕분에 집에서는 등록금 외에는 일체 용돈을 받지 않고 2년 간의 편입생 생활을 무사히 마쳤답니다. 다행히도 저금을 쪼끔씩 하다 보니 자취방 방값도 내었답니다.

2007년 졸업을 하고, 2년 간을 대학 조교 생활을 하면서도 DTP는 계속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을 시점에, 나는 정식 직업을 가졌는데, 잡지 사무실에서는 도데체가 새로운 기자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못하겠다고 말을 했으나 "그냥 좀 짬내서 해주면 안되냐? 부탁한다" 라는 말에.. "에휴.." 하면서 넘어가곤 했지요.  한달에 3일 정도는 잠을 못자고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조교로,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와서 밥먹고 DTP하면서 밤새고...  한달에 3일은 그랬습니다. 다행히도 역시 따박따박 들어오는 50만원이 짜다시피한 조교월급에 플러스되어 물가가 오름에도 조금은 버틸 수 있었지요.

덕분에, 몇년동안 잘 버텨온 느려터진 PowerMac 9600/200을 버리고 iBook G4 1.33GHz를 하나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싼 값에 케먹 장터에 나온걸 늦은 밤에 전화해서 차끌고 쫒아가서 잽싸게 받아온 아이북이었습니다. 산지 한달도 안되서 코엑스 전시장에 갖고갔다가 누군가 훔쳐가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달만에 우연하게 잡지사 사무실로 돌아오는 바람에 되찾은 아이북입니다. 그것으로 2년간 DTP를 계속했지요.

조교를 그만두고서 그 잡지 DTP일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사무실에서는 새로운 기자를 찾을 생각은 안하고, 사정을 아는 저는 말하기 미안하기도 하면서 말하면 어차피 계속해달란 부탁을 할 것 같으니 그만두겠다는 말도 못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그 일을 계속하고 있지요.

제가 취미를 하나 갖고 있는데, 그 취미에 관한 연맹에서 격월간지를 회원들에게 제작하여 줍니다.
올해 초, 저보고 편집장을 맡아달라고 하더라구요. 흥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돈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사단법인체이고 우리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이 되고 있고 저도 회원이고 하니 무료봉사입니다. 격월간지이기에 두 달에 한 번 나오는것이니 두달에 일주일만 좀 신경써주면 됩니다.

역시 여기에도 Quark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편집장을 해오셨던 분들이 모두 Quark을 모르니 운영진에서 원고주면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대충 짜주고, 운영진은 그냥 훓어보고 넘어가는 정도였지요.

헌데, 저는 Quark을 알고 DTP를 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조금 괴롭혔던 모양입니다. 레이아웃이 별로니 좀 바꿔달라, 교정보면서 요 모양은 좀 아닌데 쬐끔 바꿔보죠... 혹은 IBM의 약물이 넘어가면서 ??? 로 바뀐것들 보고 이게 뭐냐며 좀 깍달시리 따져대서 그런지 디자이너가 한번은 저한테 짜증을 내더라구요. 뭐 이 외에도 부딪히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슬슬 참아나갔지요.
뭐.. 내키진 않지만 좋은 마음으로 디자이너 스타일을 좀 맞춰주면서 일부는 내가 직접 작업하고 나머지는 디자이너한테 넘기는 수순으로 진행을 해왔습니다.

지난 11월 초에, 올해 격월간지의 마지막호를 탈고 했는데
탈고 후 인쇄소에서 출고되고 DM대행업체에서 발송된 이후에 책을 보니 편집에 가장 큰 오류를 범한 것을 발견했지요. 말로 하긴 쪽팔리지만, 원고에 빼다로 설정된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의 이미지가 위로 밀려 머리가 잘려 인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보다보니 한글2007로 넘겨준 원고에서 약물을 ???로 그대로 표기된 부분도 있더군요.
1차적으로는 디자이너를 믿은 편집장인 제가 잘못이 크지요. 헌데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듯 싶어 전격적으로 디자이너를 교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인쇄소에서 인디자인으로 바꿔보라는 제안이 있어서 검토중에 있었는데 이 기회에 Quark에서 인디자인으로 갈아타보려고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저는 본 직업이 "땜쟁이"입니다. DTP가 본업은 아닙니다.
전공 자체도 디자인이 아니고 "전자" 그리고 "통신" 입니다. 그중에서도 완전히 딱딱한 하드웨어입니다.
그런 내가.. 지금.. "어느 회로를 만들어볼까?" 이런 고민과 동시에 "Quark을 버리고 인디자인으로 갈아탈까?" 하는 이런 관계없는 고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직업적으로 "땜쟁이"한테.... 미적감각과 창의성이 겸비되어야 할 "DTP"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한 달에 3일 동안은, 한쪽에는 회로 PCB와 인두기, 각종 부품이 늘어져있는 한 쪽에는 검은색 Pro Keyboard와 Pro Mouse가 튀어나와 있고 모니터에는 MacOS가 나타나있고 이미지 편집을 하고 Quark 편집을 하고... 이럴때마다 저 스스로 생각을 해보는데 아리송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어울릴까요? "땜쟁이"와 "DTP"가요?

혼자서 생각나서 끄적대 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제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기관지인 KARL지의 편집작업시 미리 확인하지 못하여 발생된 사건에 대한 글입니다. DTP하는 분들께는 실수를 우발치 않도록 좋은 모범답안이 될 것입니다.

6K5BOX 님께 드립니다. [KARL지 관련]
작성자: DS1NMA   등록일: 2009-11-24 00:24:32   조회: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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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편집위원장 DS1NMA 박상보 입니다.
금번 발송된 11/12월 KARL지 KDN탐방기에 잘못된 편집에 대해서 편집위원장에게 묻는다고 하셔서
제가 글로서 말씀을 드립니다. 중간에 다른 글이 있으면 오해를 살 요지가 있어 제목을 먼저 달아놓고
이후 작성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편집과정에서 세종대왕 이미지에 흉상이 보이지 않게 편집이 된 것에 대해서 편집을 맡고 있는 제가 최종과정에서 확인을 못한 점에 대해 여러 회원님들께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은, 글을 빌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번 임시총회와 작금의 연맹사태와 관련되어 실수가 벌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2009. 5월에 편집위원장으로 위촉받고, 이후 5/6월 KARL지부터 직접 편집작업에 참여해왔습니다.
통상 어느 인쇄물이건간에, 원고가 모아지고 컴퓨터로 편집을 시작하고, 완성되면 교정을 본 후, 완성된 파일을 인쇄소로 보내어 인쇄작업이 들어가고 인쇄가 완료되면 발송을 하게 됩니다.

우리 KARL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회원님들의 원고가 모아지면, 모아진 원고를 편집위원회 회의를 거쳐 페이지를 정한 다음, 아르바이트로 활용하고 있는 프리랜서 편집자에게 넘겨주면, 편집자는 편집을 완료하여 프린트를 통해 한번 교정을 본 후,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고 다시 재교정작업을 거치고, 수정이 완료된 파일을 모아서 인쇄소로 발송되면, 인쇄소는 인쇄된 KARL지를 DM업체로 전달하고, DM업체가 회원님들께 발송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제가 편집작업에 참여하고서부터는 제가 작성하는 원고와 일부 광고에 한해서 제가 직접 편집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교정과정을 2회 출력에서 1회 출력, 1회 화면교정로 절차를 바꾸었습니다. 이유는 "KARL지가 너무 늦게 나온다" "빨리 안되냐?"라는 건의를 하도 많이 받아서 최대한 KARL지의 발송을 땡겨볼라고 애를 쓰다보니 그렇게 줄여버렸습니다. 이건 비용에도 결구되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제가 맡은 이후 통상 KARL지는 격월임을 고려해서 그 달 첫 주에 작업에 착수를 해 왔습니다.
11/12월 KARL지의 경우, 11월 2일부터 원고 수집 및 정리작업에 착수하였고 제가 사무국 직원에게 지시를 하였으며 11월 7일 오후 2:00에 편집위원회 회의가 있었으며,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편집작업을 하였고, 11일 수요일에는 프리랜서 편집자가 연맹 사무국에 출근하여 최종수정 및 교정을 하였으며, 12일에 인쇄소로 파일을 보냈습니다.

이번 11/12월 KARL지의 경우, 교정작업을 저와 연맹 사무국 직원과 단 둘이 했습니다.
1차로 사무국 직원분께서 해주시고, 이후 수정작업을 거친 내용을 제가 2차로 화면을 통해 교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미처 KDN탐방기에 이미지가 밀린 부분을 보지 못했고 인쇄소로 바로 넘겨 인쇄가 되었고 발송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서울본부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다 KARL지를 보고 발견한 내용으로
편집시에는 이상이 없었는데 아마도 편집된 파일이 출판사로 전송되며 밀린 것으로 추정되며
내일 날이 밝는대로 진상을 알아 보겠습니다. "

위 글은 DS1OLH 유부원 이사께서 올리신 사과의 글의 일부입니다. 
KDN탐방기에서 세종대왕님과 이순신장군 그림이 잘려버린 부분에 대해 진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DS1OLH OM께서 올리신 날, 서울본부 운영위원회가 열린 지난 11월 18일 수요일에는 이미 KARL지가 인쇄가 끝나고 회원여러분께 발송이 되버린 시점입니다. 저도 서울본부 운영위원으로서 참석했다가 같은 건물에 있는 연맹에 보유분으로 택배로 발송되온 KARL지의 완성본을 보고서야 잘못된 것을 알았고, 저도 컴퓨터에 저장된 원본 데이터를 확인해본 결과 편집자의 실수로 이미지가 위로 밀려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출판사로 전송되어 밀린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실수한 것을 제가 최종 교정과정에서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위에 첨부된 그림은, KARL지를 편집하는데 사용되는 매킨토시의 QuarkXpress 3.3K를 캡쳐한 화면입니다.
위 이미지가 이번에 잘못 나간 63페이지의 KARL지의 모양이며, 아래는 정상적으로 되었어야 하는 KARL지의 모양입니다. 그림을 보시다시피 본래 이미지가 일부러 잘린 것이 아니라 위로 밀려버린 것입니다. 편집자가 작업을 하는 도중 위로 밀려버렸고, 최종으로 제가 확인하는 과정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분 댓글에서는, 본연의 임무를 다 하지 않았으니 다시 발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된 것을 알았을때의 시점은 다시 발행하기는 어려운 시점입니다. 이미 발행이 되었고, 다시 발행한다면 그만큼 비용이 지출되겠지요. 네. 틀렸으면 분명 사비를 털어서라도 재제작을 들어가라면 들어가야죠. 하지만 편집위원장인 저나 홍보이사이신 DS1OLH OM이나 격월로 발행되는 KARL지의 재제작비를 개인비용으로 충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회원여러분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DS1OLH OM께서는 미리 사과의 글을 올리신 것입니다.

그날, 11월 18일. 운영위원회를 마치고 한 잔 하고 있는 늦은 밤에 이미 집으로 돌아가신 DS1OLH OM께서는 제게 전화를 하셔서 "NMA, 미리 사과의 글을 올려야 겠다" 하시길래, 저는 나중에 KARL지가 집에 도착해서 읽어보실쯤 되면 제가 사과문을 쓸 생각으로 먼저 쓰시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DS1OLH OM께서는 저의 부탁을 만류하시고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사과문을 쓰셨습니다. 

글을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누구로부터 KARL지의 제작기일에 대해 압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설령 제게 누군가가 KARL지의 기일을 가지고 압박을 주셔도 저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는 회원들께 더 좋은 내용으로 KARL지를 전해드려야 한다는 소임때문이며, 둘째는 아무리 그래도 저도 먹구사는 것이 우선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7/8월 KARL지의 경우에는 제가 바빠서 일주일 정도 늦게 작업에 착수하게 된 적도 있습니다. 평시보다 늦게 발간되었고 그만큼 늦게 도착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KARL지 이번에도 나오죠?" "언제쯤 나와요?" 라는 얘기는 들었어도, "KARL지 빨리 빼야되" "00날까지 회원들에게 가야되" 라는 기일있는 압박의 얘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KARL지가 빨리 나와야 한다는 얘기 한 사람도 없고, 했어도 저는 안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 불찰로 미처 틀린 부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편집자를 믿었기에 디자인 부분은 생략하고 본문의 글자만 교정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한번 회원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제가 다음 KARL지도 계속하게 된다면 차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약속드립니다.

더불어 6K5BOX 창원지부장님께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11/12월 KARL지를 제작함에 있어서, 금번 연맹의 사태와 관련되어 시일에 쫓기거나 압박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더불어, DS1OLH 유부원 이사님께서는 제가 KARL지 마지막 교정을 보는 시점이었던 11월 11일 수요일에는 사무실 업무가 바쁘셔서 교정에 참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보통 교정하는 날에는 오신다고 하셔도, 제가 굳이 오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돌아오는 29일에 창원 만남의 장(창원정크)를 갈 예정입니다.
그때 만나뵈면, KARL지가 어떻게해서 실수가 벌어졌는지, 제 컴퓨터에 저장된 KARL지의 원본데이터를 열어서 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부장님께 여쭈어 봅니다.
제가 교정과정에서 보지 못한 그림, 그 그림을 보지 못해서 세종대왕님과 이순신장군 동상의 머리가 잘려서 인쇄되었습니다. 누구의 압박도 없었고 누구의 요구도 없었고 단지 제 실수 입니다.

이것이 연맹이 지탄을 받아야 하고, KARL지가 지탄을 받아야 하고, 시간 쪼개서 KARL지 제작에 참여하는 제가 지탄을 받아야 하고,  올리지 말라는 저의 요청을 만류하시고 KARL지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를 미리 아시고 대표해서 사과의 글을 올리신 DS1OLH 유부원 OM께서 저의 실수로 인해서 지탄을 받아야 하는 건인가요?

6K5BOX OM님도 지역의 지부를 운영하시고, 연맹과 본부를 아끼셔서 현 사태에 지탄을 하시는 것 처럼
저 DS1NMA도, 그리고 DS1OLH OM도 KARL지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좋은 KARL지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저도 사람인지라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실수가,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받겠습니다. 하지만 부탁이온데, 금번 연맹 사태와 KARL지와는 결구시키지 말아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워, 2시간이 넘도록, 13번의 수정을 하였습니다.
2시간이 넘도록, 13번의 수정은 금번 연맹사태와 관련된 꿍꿍이가 아님을 더불어 말씀드립니다.
어느 분이 이 늦은 새벽에 피곤한 사람 잠 못자게 꿍꿍이를 부리겠습니까. 저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입니다.

조심스럽게 글을 올리오니, 교정과정에서 저로 인해서 발생한 실수로 KARL지에 그림이 잘못 나온 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S1NMA 박상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