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1NMA Blog


우연히 아침에 YTN 뉴스를 보다가 "지방선거 D-8 대변인에게 듣는다"를 보다가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상단사진)이 "이명박 대통령께서 군대를 다녀오시지 않았습니다" 라는 얘기를 하는데
보고서 검색하다보니... 웃지않을 수 없는게 검색되었는데...

(절대로, 대통령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대부분의 네티즌은 "저렇게 쏘면 얼굴 밤탱이 되네.." 라고들 하십니다.
그렇지요. 총을 쏴본 사람이라면 개머리판은 어깨에 들이대는거라는건 기본으로 다 아는데...
개머리판 뒤에 고리가 가늠자인줄 아셨던 모양입니다....

뒤에 쓰리스타(중장)이 어이없다는 투로 쳐다보네요... 군대 안다녀 오신 분들로 구성된 행정부에게 안보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특이해서 포스팅 해봅니다.


검색하다가 더 웃긴걸 봤는데,군필자와 미필자의 총잡는 자세입니다.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대명비발디파크의 리프트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문입니다. 스키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 적혀있는데, 어디서나 늘 강조하는 "직활강 금지"를 뜻하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어이가 없는 것이

"직할강 금지"

직할강?? 직활강 아닌가요?

활강(滑降)
〖스키〗a descent.
직―활강
(直滑降)[지콸―]【명사】【~하다|자동사】 스키에서, 산의 경사면(傾斜面)을 일직선으로 똑바로 미끄러져 내려옴.

메이저급  스키리조트에서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이런 실수를....
하루빨리 수정되리라 믿습니다.

==> 지난 2010년 2월 9일, 우편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주)대명레저산업으로 부터 온 등기우편인데, 오기에 대해 제안한 내용에 대해
      정정하겠다는 내용의 우편물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1월 중순쯤에 다녀왔을때 오기가 수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빠른 조치에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 첫 날, 불러주는 이도 없고 놀것도 없고 해서 일을 하고 있다가 심심해서 대명비발디파크 홈페이지를 구경하다가, 밤샘스키+렌탈=35,000원을 보고서는.. 바로 질러버리고 오늘 다녀왔습니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뚫리니 홍천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트립미터로만 보았을때 100km가 안되는, 시간으로도 1시간이면 주파하는 거리다보니 여유가 생기네요.

스키를 13년동안 타왔지만, 틈틈히 혼자서만 다녀버릇 해가지고 사실 그렇게 잘 타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스키장이나 슬로프는 더더욱이 기피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렇기에 10년 전 부터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시설이 좋은 용평리조트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헌데, 요즘은.. 피곤도 하고 연료비도 있고 등등등 슬슬 가까운쪽으로 나와볼까 물색을 하던 중에 한 번 가보자 하고 대명비발디파크를 다녀왔습니다.

확실히, 서울과 가까운 곳이다 보니 스키어/스노보더들이 늘 다녔던 용평리조트 보다는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몰려있더군요. 심야개장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사실 이 글의 주제는 제가 스키장을 다녀온 얘기가 아니고 오늘 심야스키를 타면서 정말 짜증나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이렇게 적어봅니다. 사실, 교통이 편리해지고 장비가격과 서비스비용이 낮아지면서 스키나 스노보드는 지금은 조금만 질러버리면 즐길수 있는 스포츠가 되었지만 그 나름대로는 고급스포츠에 속합니다. 한 계절에만 즐길수 있는데다가, 스노보드 인구가 증가하기 이전인 11년전까지만 해도 쉽게 엄두내지 못하던 스포츠 입니다.

제가 스키를 처음 타던 13년전에 스키학교 강습을 받으면서 스키에 대한 에티켓을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스노보드도 없었습니다. 스키장을 가면 오직 스키어들 뿐이었는데 고급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요소가 많은 스포츠다보니 그나름대로의 에티켓이 존재하고, 그때는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큰 죄라도 지은 듯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스키어/스노보더들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에티켓을 옛 이야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것을 몸소 오늘 체험해보았습니다. 이제서야 후회하고 있네요. 그냥 용평리조트를 다닐걸.. 멀어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좀 실망했던 것을 살짝 정리해보겠습니다.
스키어/스노보더님들.. 부탁인데 제발 다른 사람들의 즐거운 스킹과 보딩,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금 신경쓰고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1. 줄을 제대로 서주시고, 리프트는 채워서 탑시다!

보통 슬로프의 리프트는 구형 리프트는 4인, 신형 리프트는 6인, 어떤 리프트는 8인짜리도 있습니다. 리프트의 앞으로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스키장 안전요원이 인원통제를 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리프트를 타는 방법과 리프트 라인에 오기 전입니다. 보통 스키장을 올때 혼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같은 독수공방이나 혼자 다니는 반면 대부분의 분들은 가족이나 친지, 친구와 같이 옵니다. 그러면 몰려서 다니게 되고 리프트도 같이 타려고 할 것입니다. 당연한 심리이죠.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승차인원이 4인인 리프트면, 안전요원 앞에는 4인이 일렬로 서는 게이트가 있고 그 뒤로 줄을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4인이 정확하게 서야 되는데 삐뚤빼뚤합니다. 물론 앞뒤 간격이 삐뚤빼뚤할 수 있습니다. 어느분은 보드를 타시고 어느분은 스키를 타니까요.
리프트를 타기 위해 대기하거나, 라이딩을 할때 남의 장비를 밟거나 터치하면 안되는 정도의 에티켓은 다들 알고 계시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앞뒤 간격을 생각하다보면 줄이 삐뚤빼뚤하기도 하지만, 좌우로는 정렬을 해주셔야지요.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줄을 그렇게 서다보면 혼자 온 사람은 무지하게 뻘쭘해 집니다. 줄을 선다고 섰는데 내 앞에 어떤 사람들이 있다면 그 친구들이 달려와서 새치기를 합니다. 그럼 무지하게 성질나겠죠?
혼자 온 사람은 혼자서 리프트를 타게 됩니다. 친구들과 같이 오신 분은 4인 리프트에 꽉 채워 탑니다. 이렇게 타게 되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성질납니다. 더 타면 뒷사람이 좀 빨리 탈텐데 하는 생각으로요.
어쩌다보니 리프트를 혼자 탔습니다. 혼자 타고 올라가는 리프트를 상상해 보세요.
리프트가 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균형이 맞지 않으니까 그렇죠. 물론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만 리프트 승차감은 불안해집니다. 올라가는 내내 곤욕입니다.
그러니, 옆에 누가 타든 말든 일단 타세요. 어차피 같이 온 친구, 다음 리프트 타고 올라옵니다. 리프트 한 차와 한 차 사이 돌아오는데 불과 30초도 안걸립니다.

2. 제발, 남의 플레이트 밟거나 치지 마세요.

오늘의 경우, 보더님들이 더 합니다.
리프트 기다릴때, 보더님들은 보드를 빼고 들고서 탑니다. 일반 걸어다니는 사람과 동일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스키어는 플레이트를 들고 탈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스키어가 리프트를 기다리면 앞뒤로 약 70cm정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보더님들이 리프트를 기다리다가 무의식적으로 앞사람이나 뒷사람 플레이트를 밟게 됩니다. 이해 못하는것은 아니지만 신경을 쓰셨으면 합니다.
오늘 어떤 개념을 밥말아먹은 청년은 이렇게 하더라구요.
가만히 리프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 뒤꿈치에서 진동이 와서 뒤돌아보니 뒤에 있던 보더가 기다리는게 지루한지 자기 보드를 들었다 놨다 하더라구요. 이 청춘은 보드가 땅을 치고 있는줄 알았나봅니다. 하지만 땅이 아니라 내 플레이트 뒤쪽을 치고 있던것이죠. 뒤를 힐끔보며 눈치를 줬는데도 연타로 때리더군요. 성질나서 옆 리프트를 탔습니다.
남의 플레이트를 터치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예의인 것을, 그걸 모르는 무개념은 되지 맙시다.

3. 제발, 충분히 연습하시고 다음 등급의 슬로프로 올라오세요.

저도 13년이나 스키를 탔지만, 바로 중급이나 상급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겨울스포츠다보니 봄,여름,가을 사이에 감각을 잃었을 수 있고, 준비운동을 해도 몸이 좀 더 유연해지려면 경사가 완만한 것 부터 시작해서 다음 단계의 슬로프로 넘어갑니다.
오늘 비발디파크의 경우도, 저는 비발디파크에서는 처음 타보는지라 슬로프를 인식할 겸 해서 처음부터 초심자 코스인 발라드 슬로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급 슬로프인 재즈 슬로프로 넘어갔지요.
오늘 보니까 초심자들이 꽤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한참 발라드 슬로프(초심자용)를 타다가 재즈(중급용)로 넘어갔는데, 재즈 슬로프는 발라드에 비해 길이도 길고 경사도 차이가 상당히 크더라구요. 천천히 내려가다가 스노보더와 경미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스노보더가 약한 빙판에서 엣지질을 못하고 미끄러지면서 스킹을 하는 제 종아리를 밀어버리면서 함께 넘어졌는데요. 크게 다친건 없다 싶어 서로 이해와 사과의 인사를 나누고 플레이트를 정리하고 다시 스킹을 하는데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종아리를 보더의 플레이트를 정통으로 맞았으니 종아리 근육이 경직되는건 당연한 것이죠.
슬로프 가장자리를 보니 패트롤이 부상자를 이송할 끌것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여, 패트롤 근처면 안전하겠지 싶어 가장자리로 이동을 하여 플레이트를 풀고 바닥에 앉고 부츠를 받침 삼아 다리를 펴서 잠시 맛사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패트롤이 불편하느냐고 물어보길래 경미한 사고로 근육이 놀라서 그런것이니 잠시만 주물러 주면 괜찮을 것이다라고 이해를 시키고 계속 하였지요. 잠시 후 부상자를 이송할 끌것을 다른 패트롤이 가져왔고 부상자를 이송시키고 잠시 후에 다른 패트롤이 다른 부상자를 이송하려고 끌것을 가져다가 나를 보고 또 다시 물어봐서 괜찮다고 얘기를 하니, 어떤 여자 스노보더 왈.. 

"저...저도 끌고가주면 안되요? 저 못내려 가겠어요" 라고 합니다.

제발.. 엣지질을 해서라도 내려갈 정도로 연습 후에 좀 올라와 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립니다.

4. 제발, 슬로프 가운데 앉아있지 말아주세요.

비발디파크.. 정말 희한합니다.
발라드 슬로프는 의외로 거리가 짧습니다. 거리가 불과 300m밖에 되지 않아 뵙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슬로프의 1/3을 앉아서 쉬는 보더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자리도 아니고 한 가운데만 집중적으로요.
이런분들은 다른 보더나 스키어들에게 정말 곤욕입니다. 피하는것도 문제지만 혹여 미끄러졌을 때, 충돌도 우려됩니다. 어떤 분은 슬로프 한 가운데 앉아서 담배까지 피우시는데 정말.. 이런분들은 에티켓을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스키어님/스노보더님... 제발 슬로프 가운데 앉아서 쉬지 마시고 가능하면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아니면 슬로프 가장자리, 그게 안되면 그냥 내려가서 쉬세요. 
둘이 하는 연습도 마찬가지 입니다. 연습을 하시려거든 가운데는 비워주시고 가능하면 가장자리에서 하세요. 

5. 스노보더님들.. 플레이트 주행은 짧게 해주세요.

스키어들이 제일 곤욕스러운 부분입니다. 보더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부분입니다. 
스키는 플레이트 면적이 작아서 플레이트 주행을 하면 눈바닥에 나타나는 플레이트 자국의 폭은 얇습니다. 반면 스노보드는 넓어서 플레이트 주행을 하면 나타나는 플레이트 자국은 상당히 넓습니다. 
플레이트 주행으로 생기는 자국은 평평합니다. 영하의 기온에 바람이 불게 되면 이 자국의 윗면은 살짝 얼어버립니다. 아시겠지만 얼음에서는 눈에서 엣징하는 것 보다 엣징이 안되는 것은 잘 아시죠? 플레이트 주행자국이 짧으면 다행인데, 이 자국이 S자로 크게 그려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거기를 그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다가 미끄러져 다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환장합니다. 
앞서 오늘 다른 보더와 부딪힌 이유가, 보더가 라이딩을 하다가 얼어버린 플레이트 자국에서 엣징을 하였으나 엣징이 걸리지 않아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생긴 사고였습니다. 
슬로프에서 얼음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이 얼음이 군데군데 짧게 있으면 그냥 통과하거나 피해가면 되는데, 보드의 플레이트가 지나간 자리는 면적이 큽니다. 그 큰 면적이 저 아래에까지 그려져 있다면 스키 못탑니다.
제발 부탁인데, 보더님들.. 플레이트 주행은 짧게 해주시어 엣지와 병행해서 주행하는
습관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스키장이 아이스링크가 되지는 말아야 겠지요? 우리는 스키와 보드를 타려고 그 멀리까지 간 것이지, 스케이트 타러 간건 아닙니다. 스케이트는 광화문이나 목동가서 타야죠.
 






아이폰의 출시가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각종 언론에서는 말하고 있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Apple 아이폰의 KT향 출시로 긴장하고 있는 SKT와 삼성전자는 옴니아2의 가격을 낮춤으로서 아이폰의 대항마를 억제하겠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간에는 SKT에서 댓글알바(?)를 고용하면서 아이폰을 깎아내린다는 언론보도도 있기도 하였다.
흔히 Early Adaptor라고 하는 현대인들은 아이폰에 열광하고 있다. 그만의 인터페이스와 그만의 디자인에 홀딱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스마트폰(Smartphone)의 보급률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아이폰 때문에 SKT 가입자가 대거 KT로 넘어가는 상황도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출시에는 HSDPA(High Speed Download Protocol Access)를 사용하는 WCDMA가 한 몫을 했다. 데이터량이 큰 멀티미디어 정보를 주기에 최적화된 프로토콜을 사용하므로, 스마트폰 활용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헌데, 아이폰, 옴니아2, 블랙베리 등 이런 스마트폰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즘의 상황에, 통신사들이 간과.. 혹은 무시하고 있는 사용자들이 있다. 

바로 011, 016, 017, 018, 019 번호를 자신의 분신처럼 사용하는 2G 사용자들이다. 2G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하지 못한다. 왜? 단말기가 없다는 이유이다.

2G 스마트폰의 경우, 2003년에 삼성에서 출시된 SCH-M420(SKT향), SPH-M4300(KTF향)과 비슷한 시기에 LG에서 출시된 SC-8000(SKT향), LC-8000(KTF,LGT향)을 끝으로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이마저도 SKT와 KTF의 지랄같은 압력으로 SKT향 스마트폰에는 WI-FI가 배재되고, KTF향에만 WI-FI가 필수탑재되고, 전화프로그램도 허접하기 이를데 없이 만들어졌다. 더군다나 단말기 크기는 왜이리 컸는지..

그에 대비하면 아이폰이나 옴니아2, 블랙베리는 상당히 작아진 스마트폰이다.
지금 사용자들에 구미에 딱 맞는 폰이다.
SKT용으로 나오는 옴니아, 옴니아2에는 SKT향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WI-FI가 내장되어 나왔단다. SKT 사용자들이라면 상당히 반길만한 변혁에 속한다.

아이폰, 옴니아2 등의 요즘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을 Early Adaptor로 불리기 충분하다. 하지만 통신사와 제조사의 압박으로, 그들은 별수없이 010으로 시작되는 새번호를 사용해야 하고, 일부 010으로 사용하던 사람들은 에이징이라는 방법으로 가입하여 사용하는 사람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봇물처럼 나오는 요즘 시대에, 011~019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접하기 어려운, 찬밥신세이다.
그나마 "햅틱 착" 과 같은 2G용의 풀터치 폰을 만든 것도 천만 다행이긴 하다만, 그래도 스마트폰을 동경하고 있다.

국내 2G 가입자수는 이동통신 사용국민 4,740만명 중 2,517만명으로 53.1%가 2G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SKT의 경우 전체가입자 2,401만명 중, 52.6%인 1,265만명이 2G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1,265만명의 속에는 011/017을 10~20년동안 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016~019를 사용하면서 PCS의 통화품질이 싫어서 800MHz CDMA의 SKT로 넘어온 사용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SKT와 삼성전자는 2G 800MHz CDMA를 사용하는 1,265만명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1,265만명은 SKT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사용자라는 것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비록, 주파수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SKT가 꾿꾿하게 사수하고 있는 800MHz의 점유를 위해서라도 이 1,265만명은 800MHz 사수에 결정적인 힘이 되줄 것이다. 

하나 더, 결정적인 것이 있다. 
과거 한국이동통신(현, SKT)이 1999년, FDMA 아날로그 서비스를 종료할 적에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아날로그 서비스를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몇 명의 가입자가 있다고 하니.. 하지만 그 여파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분명 FDMA의 아날로그 서비스보다 CDMA 서비스가 통화품질면에서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쓰던 011번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단말기는 CDMA와 아날로그를 동시에 지원하는 단말기도 있엇으니 수월하게 전환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동력은 800MHz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통화품질이 좋아졌음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반지하에서도 통화가 되지 않았던 아날로그폰이 CDMA로 바꾸니까 통화가 되고, 1300고지의 산 꼭대기에서도 통화가 되는 이력을 보면 상당히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현재의 800MHz 2G CDMA의 서비스를 1999년 상황처럼 서비스를 종료하고 2100MHz 3G WCDMA로 전환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첫째로, 800MHz 2G CDMA와 2100MHz 3G WCDMA를 함께 사용하는 단말기도 없을 뿐더러, 둘째로 현재 규정대로라면 이들은 011~019를 버려야 한다. 자신의 분신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셋째로 통화품질이 나빠졌음 나빠졌지 결코 좋아졌다고 사용자가 느낄 수 없으며, 반지하에서도 통화가 되던 CDMA를 WCDMA로 바꾸니까 통화가 더 안되고 1300고지의 산 꼭대기에서 깨끗한 통화가 되던 CDMA가 WCDMA로 바꾸니 통화가 자주 끊어지는 현상을 보면 결코 좋아질리는 없는 것이다. 
즉, 800MHz 2G CDMA가 2100MHz 3G CDMA로 가게 되면 1,265만명의 SKT 사용자는 분명히 분노를 할 만한 상황이 나올 것임은 안봐도 뻔한 상황이다. 

SKT와 삼성전자는 이들에게도 휴대폰의 선택권을 3G 사용자들 만큼은 주어야 한다.
이들에게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1,265만명 중에도 옴니아2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아이폰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아이폰은 Apple에서 2G CDMA가 나오지 않았으니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SKT의 주문에 따라 움직이는 삼성전자는 800MHz 2G향 옴니아2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3G WCDMA의 "햅틱2, 햅틱 팝"에 이어 2G CDMA용 "햅틱 착"을 그것도 작은 크기로 만들어낸 것을 보면, 분명 삼성전자는 기존의 옴니아2 기능을 그대로 두고 네트워크만 2G로 변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것으로 생각된다. 삼성전자는 "옴니아OZ"도 만들어 냈다. 사실상 LGT도 영상전화가 되는 3G라고 하지만 실상 네트워크는 1700MHz 2G CDMA 네트워크가 아닌가. 삼성전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SKT뿐 아니라 KT향으로 출시해도 된다. 그렇다면 KT의 2G 사용자도 잡을수 있지 않은가.

SKT가 항상 노래하는 것이 있다. "생각대로.."
1,265만명의 고유 사용자.. 2G 사용자를 생각해주기 바란다.
그들의 생각대로 많은 폰을 만들어 내주기를 바란다.
그들의 생각대로 2G향 스마트폰도 출시해주기를 바란다.
기존의 2G EV-DO 망에서도 기다려줄 수 있는 속도는 나온다.
그들은 Early Adaptor가 되기를 원한다. 그들에게도 권리를 주길 바란다. Early Adaptor가 될 권리을 말이다.

나 자신도 현대인에 속한다. 또 나 자신도 오래전부터는 Early Adaptor를 자청하기도 하였다. 1인 1휴대폰 시대가 오기도 이전이었던 1997년 800MHz Analog(FDMA) 폰을 사용함을 시작으로 SKT CDMA를 쓰기도 하였고, 1998년 1700MHz CDMA PCS가 출시된 이후 LGT의 PCS를 시작으로 당시 한솔PCS(현, KT)의 018 PCS를 쓰기도 하였다.  이후 1999년 신세기통신(현, SKT)의 017번호를 사용하는 800MHz CDMA의 사용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이후 10년 가량 여러 단말기를 사용하면서도 통신사와 번호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번호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2001년 신세기통신의 SK텔레콤 합병 이후 017의 신규가입이 제한이 되면서 번호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지우게 되었고 이후 오랜시간이 지나다보니 많은 이들이 번호를 알게되었고 이후 번호가 바뀌게 되면 알려주기가 귀찮아 질 것 같은 상황이 되게 되었다. 또, 결정적으로는 800MHz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 PCS를 사용해본 결과 통화품질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완전 지하도 아닌 반지하방에서도 통화가 되지 않는 1700MHz의 짧은 통달거리가 싫었다. 이동통신을 전공한 나로서는 전송가능 대역폭이 큰 GHz(Giga Hertz)대역보다는 통달거리가 큰 800MHz를 선택한 것이다. 실질적인 휴대폰 사용 목적인 음성통화가 어디서든 되야 한다는 나의 고집이 있다. 그래서 2100MHz(2.1GHz)를 사용하는 WCDMA(Wide-bandwidth CDMA)가 시장에 나온지 3년이나 되었음에도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SKT의 혁신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사용코저 바라는 사람들.. Early Adaptor..

그중에는 2G 사용자도 있다는 것. 그 2G 사용자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땜쟁이한테 DTP가 어울릴까요?
박상보  2009-12-02 22:14:23  |  조회 : 26

안녕하세요.
케먹을 자주 들러다 보면서 이런 게시판도 있네 하고서는
저도 한번 제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저는 10년이 넘도록 "땜쟁이"라는 딱지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년 전에 라디오와 인두기를 만지기 시작해서
초등학교 4학년때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전자계산기 전공의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기능대학과 4년제 대학을 모두 정보통신을 전공해왔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회로와 인두기, 그리고 컴퓨터를 만지면서 살아왔지요.
기능대학을 들어갔던 21살에 컴퓨터 판매/수리점을 내서 3년간 했었고, 4년제 대학을 편입하여 졸업하고서는 같은 학과의 조교로 2년을 근무했지요. 조교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주로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대한 지도를 주업으로 하다보니 회로와 인두기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학과의 고장난 것들은 주로 제 손에서 FIX되었구요. 직업에서도 인두기를 손에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즉 속칭 "땜쟁이"에 속하는 저였지요.

작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올해 초부터 전자회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만드는게 무선기기 악세사리 키트나 자동차의 전자기기 관련 KIT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땜쟁이"지요. DTP와는 전혀 관계 없는 직업들이지요.

주로 컴퓨터를 만지면 IBM을 만지게 됩니다. 컴퓨터 수리 일을 할때는 유저가 거의 윈도우 사용자다 보니 IBM을 만지게 되었구요, 학교 조교로 근무하면서도 교육용 PC들은 모두 IBM 입니다. MAC은 만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전자회로 개발 일을 하면서도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파일용으로도 할 수 없이 IBM을 쓰고, 회로 설계나 PCB설계를 하는데에도 IBM의 OrCAD를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키트에 사용되는 외부프로그램에도 Visual C++을 사용해야 하니 할 수 없이 IBM입니다.

그런데도, 항상 MAC이 제 옆에 존재하게 됩니다.

5년 전인 2004년, 컴퓨터 매장을 하다가 말아먹고 편입시즌을 기다리며 집에서 놀던 때였습니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알게된 분께서 경영하시는 산업기기 잡지사에 기자일을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구할 동안까지 일을 해주기로 하고 취재도 다니고 자료도 수집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는 DTP를 하기에 MAC을 사용했는데, 저는 당시에 MAC도 모르고 Quark도 모르니 아래아한글로 대충 짜서 주면 편집자가 알아서 편집을 해 냈지요.
몇 달을 하다 보니, 편집자한테 괜히 미안해지니 스스로 MAC을 한대 사고 MAC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청계천 중고시장에서 PowerMac 9600/200을 하나 업어왔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구해서 프로그램 까는것부터 Quark을 다루는법도 배워서 스스로 작업을 해서 넘겼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사무실에서도 하고 집에서도 DTP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무실에서는 새 사람을 구할려는 모습이 사라져 보였습니다. 이거 참.. 핑계댈만한 거리도 없고 아는 사람이 사장님이다 보니 말도 못하겠고 해서. .그냥 아무말 없이 매달 쭈욱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지방에 대학을 편입하면서 서울을 떠나게 되었고, 그 일은 지방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학생이어서 딱히 수입이 없던 차에 다행이었지요. 매달 일주일 정도를 자료수집하여 기사를 편집하여 웹하드로 넘겨주고 매달 따박따박 50만원씩 받아왔지요. 그 50만원 덕분에 집에서는 등록금 외에는 일체 용돈을 받지 않고 2년 간의 편입생 생활을 무사히 마쳤답니다. 다행히도 저금을 쪼끔씩 하다 보니 자취방 방값도 내었답니다.

2007년 졸업을 하고, 2년 간을 대학 조교 생활을 하면서도 DTP는 계속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을 시점에, 나는 정식 직업을 가졌는데, 잡지 사무실에서는 도데체가 새로운 기자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못하겠다고 말을 했으나 "그냥 좀 짬내서 해주면 안되냐? 부탁한다" 라는 말에.. "에휴.." 하면서 넘어가곤 했지요.  한달에 3일 정도는 잠을 못자고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조교로,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와서 밥먹고 DTP하면서 밤새고...  한달에 3일은 그랬습니다. 다행히도 역시 따박따박 들어오는 50만원이 짜다시피한 조교월급에 플러스되어 물가가 오름에도 조금은 버틸 수 있었지요.

덕분에, 몇년동안 잘 버텨온 느려터진 PowerMac 9600/200을 버리고 iBook G4 1.33GHz를 하나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싼 값에 케먹 장터에 나온걸 늦은 밤에 전화해서 차끌고 쫒아가서 잽싸게 받아온 아이북이었습니다. 산지 한달도 안되서 코엑스 전시장에 갖고갔다가 누군가 훔쳐가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달만에 우연하게 잡지사 사무실로 돌아오는 바람에 되찾은 아이북입니다. 그것으로 2년간 DTP를 계속했지요.

조교를 그만두고서 그 잡지 DTP일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사무실에서는 새로운 기자를 찾을 생각은 안하고, 사정을 아는 저는 말하기 미안하기도 하면서 말하면 어차피 계속해달란 부탁을 할 것 같으니 그만두겠다는 말도 못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그 일을 계속하고 있지요.

제가 취미를 하나 갖고 있는데, 그 취미에 관한 연맹에서 격월간지를 회원들에게 제작하여 줍니다.
올해 초, 저보고 편집장을 맡아달라고 하더라구요. 흥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돈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사단법인체이고 우리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이 되고 있고 저도 회원이고 하니 무료봉사입니다. 격월간지이기에 두 달에 한 번 나오는것이니 두달에 일주일만 좀 신경써주면 됩니다.

역시 여기에도 Quark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편집장을 해오셨던 분들이 모두 Quark을 모르니 운영진에서 원고주면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대충 짜주고, 운영진은 그냥 훓어보고 넘어가는 정도였지요.

헌데, 저는 Quark을 알고 DTP를 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조금 괴롭혔던 모양입니다. 레이아웃이 별로니 좀 바꿔달라, 교정보면서 요 모양은 좀 아닌데 쬐끔 바꿔보죠... 혹은 IBM의 약물이 넘어가면서 ??? 로 바뀐것들 보고 이게 뭐냐며 좀 깍달시리 따져대서 그런지 디자이너가 한번은 저한테 짜증을 내더라구요. 뭐 이 외에도 부딪히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슬슬 참아나갔지요.
뭐.. 내키진 않지만 좋은 마음으로 디자이너 스타일을 좀 맞춰주면서 일부는 내가 직접 작업하고 나머지는 디자이너한테 넘기는 수순으로 진행을 해왔습니다.

지난 11월 초에, 올해 격월간지의 마지막호를 탈고 했는데
탈고 후 인쇄소에서 출고되고 DM대행업체에서 발송된 이후에 책을 보니 편집에 가장 큰 오류를 범한 것을 발견했지요. 말로 하긴 쪽팔리지만, 원고에 빼다로 설정된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의 이미지가 위로 밀려 머리가 잘려 인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보다보니 한글2007로 넘겨준 원고에서 약물을 ???로 그대로 표기된 부분도 있더군요.
1차적으로는 디자이너를 믿은 편집장인 제가 잘못이 크지요. 헌데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듯 싶어 전격적으로 디자이너를 교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인쇄소에서 인디자인으로 바꿔보라는 제안이 있어서 검토중에 있었는데 이 기회에 Quark에서 인디자인으로 갈아타보려고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저는 본 직업이 "땜쟁이"입니다. DTP가 본업은 아닙니다.
전공 자체도 디자인이 아니고 "전자" 그리고 "통신" 입니다. 그중에서도 완전히 딱딱한 하드웨어입니다.
그런 내가.. 지금.. "어느 회로를 만들어볼까?" 이런 고민과 동시에 "Quark을 버리고 인디자인으로 갈아탈까?" 하는 이런 관계없는 고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직업적으로 "땜쟁이"한테.... 미적감각과 창의성이 겸비되어야 할 "DTP"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한 달에 3일 동안은, 한쪽에는 회로 PCB와 인두기, 각종 부품이 늘어져있는 한 쪽에는 검은색 Pro Keyboard와 Pro Mouse가 튀어나와 있고 모니터에는 MacOS가 나타나있고 이미지 편집을 하고 Quark 편집을 하고... 이럴때마다 저 스스로 생각을 해보는데 아리송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어울릴까요? "땜쟁이"와 "DTP"가요?

혼자서 생각나서 끄적대 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제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기관지인 KARL지의 편집작업시 미리 확인하지 못하여 발생된 사건에 대한 글입니다. DTP하는 분들께는 실수를 우발치 않도록 좋은 모범답안이 될 것입니다.

6K5BOX 님께 드립니다. [KARL지 관련]
작성자: DS1NMA   등록일: 2009-11-24 00:24:32   조회: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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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편집위원장 DS1NMA 박상보 입니다.
금번 발송된 11/12월 KARL지 KDN탐방기에 잘못된 편집에 대해서 편집위원장에게 묻는다고 하셔서
제가 글로서 말씀을 드립니다. 중간에 다른 글이 있으면 오해를 살 요지가 있어 제목을 먼저 달아놓고
이후 작성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편집과정에서 세종대왕 이미지에 흉상이 보이지 않게 편집이 된 것에 대해서 편집을 맡고 있는 제가 최종과정에서 확인을 못한 점에 대해 여러 회원님들께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은, 글을 빌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번 임시총회와 작금의 연맹사태와 관련되어 실수가 벌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2009. 5월에 편집위원장으로 위촉받고, 이후 5/6월 KARL지부터 직접 편집작업에 참여해왔습니다.
통상 어느 인쇄물이건간에, 원고가 모아지고 컴퓨터로 편집을 시작하고, 완성되면 교정을 본 후, 완성된 파일을 인쇄소로 보내어 인쇄작업이 들어가고 인쇄가 완료되면 발송을 하게 됩니다.

우리 KARL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회원님들의 원고가 모아지면, 모아진 원고를 편집위원회 회의를 거쳐 페이지를 정한 다음, 아르바이트로 활용하고 있는 프리랜서 편집자에게 넘겨주면, 편집자는 편집을 완료하여 프린트를 통해 한번 교정을 본 후,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고 다시 재교정작업을 거치고, 수정이 완료된 파일을 모아서 인쇄소로 발송되면, 인쇄소는 인쇄된 KARL지를 DM업체로 전달하고, DM업체가 회원님들께 발송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제가 편집작업에 참여하고서부터는 제가 작성하는 원고와 일부 광고에 한해서 제가 직접 편집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교정과정을 2회 출력에서 1회 출력, 1회 화면교정로 절차를 바꾸었습니다. 이유는 "KARL지가 너무 늦게 나온다" "빨리 안되냐?"라는 건의를 하도 많이 받아서 최대한 KARL지의 발송을 땡겨볼라고 애를 쓰다보니 그렇게 줄여버렸습니다. 이건 비용에도 결구되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제가 맡은 이후 통상 KARL지는 격월임을 고려해서 그 달 첫 주에 작업에 착수를 해 왔습니다.
11/12월 KARL지의 경우, 11월 2일부터 원고 수집 및 정리작업에 착수하였고 제가 사무국 직원에게 지시를 하였으며 11월 7일 오후 2:00에 편집위원회 회의가 있었으며,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편집작업을 하였고, 11일 수요일에는 프리랜서 편집자가 연맹 사무국에 출근하여 최종수정 및 교정을 하였으며, 12일에 인쇄소로 파일을 보냈습니다.

이번 11/12월 KARL지의 경우, 교정작업을 저와 연맹 사무국 직원과 단 둘이 했습니다.
1차로 사무국 직원분께서 해주시고, 이후 수정작업을 거친 내용을 제가 2차로 화면을 통해 교정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미처 KDN탐방기에 이미지가 밀린 부분을 보지 못했고 인쇄소로 바로 넘겨 인쇄가 되었고 발송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서울본부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다 KARL지를 보고 발견한 내용으로
편집시에는 이상이 없었는데 아마도 편집된 파일이 출판사로 전송되며 밀린 것으로 추정되며
내일 날이 밝는대로 진상을 알아 보겠습니다. "

위 글은 DS1OLH 유부원 이사께서 올리신 사과의 글의 일부입니다. 
KDN탐방기에서 세종대왕님과 이순신장군 그림이 잘려버린 부분에 대해 진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DS1OLH OM께서 올리신 날, 서울본부 운영위원회가 열린 지난 11월 18일 수요일에는 이미 KARL지가 인쇄가 끝나고 회원여러분께 발송이 되버린 시점입니다. 저도 서울본부 운영위원으로서 참석했다가 같은 건물에 있는 연맹에 보유분으로 택배로 발송되온 KARL지의 완성본을 보고서야 잘못된 것을 알았고, 저도 컴퓨터에 저장된 원본 데이터를 확인해본 결과 편집자의 실수로 이미지가 위로 밀려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출판사로 전송되어 밀린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실수한 것을 제가 최종 교정과정에서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위에 첨부된 그림은, KARL지를 편집하는데 사용되는 매킨토시의 QuarkXpress 3.3K를 캡쳐한 화면입니다.
위 이미지가 이번에 잘못 나간 63페이지의 KARL지의 모양이며, 아래는 정상적으로 되었어야 하는 KARL지의 모양입니다. 그림을 보시다시피 본래 이미지가 일부러 잘린 것이 아니라 위로 밀려버린 것입니다. 편집자가 작업을 하는 도중 위로 밀려버렸고, 최종으로 제가 확인하는 과정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분 댓글에서는, 본연의 임무를 다 하지 않았으니 다시 발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된 것을 알았을때의 시점은 다시 발행하기는 어려운 시점입니다. 이미 발행이 되었고, 다시 발행한다면 그만큼 비용이 지출되겠지요. 네. 틀렸으면 분명 사비를 털어서라도 재제작을 들어가라면 들어가야죠. 하지만 편집위원장인 저나 홍보이사이신 DS1OLH OM이나 격월로 발행되는 KARL지의 재제작비를 개인비용으로 충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회원여러분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DS1OLH OM께서는 미리 사과의 글을 올리신 것입니다.

그날, 11월 18일. 운영위원회를 마치고 한 잔 하고 있는 늦은 밤에 이미 집으로 돌아가신 DS1OLH OM께서는 제게 전화를 하셔서 "NMA, 미리 사과의 글을 올려야 겠다" 하시길래, 저는 나중에 KARL지가 집에 도착해서 읽어보실쯤 되면 제가 사과문을 쓸 생각으로 먼저 쓰시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DS1OLH OM께서는 저의 부탁을 만류하시고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사과문을 쓰셨습니다. 

글을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누구로부터 KARL지의 제작기일에 대해 압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설령 제게 누군가가 KARL지의 기일을 가지고 압박을 주셔도 저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는 회원들께 더 좋은 내용으로 KARL지를 전해드려야 한다는 소임때문이며, 둘째는 아무리 그래도 저도 먹구사는 것이 우선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7/8월 KARL지의 경우에는 제가 바빠서 일주일 정도 늦게 작업에 착수하게 된 적도 있습니다. 평시보다 늦게 발간되었고 그만큼 늦게 도착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KARL지 이번에도 나오죠?" "언제쯤 나와요?" 라는 얘기는 들었어도, "KARL지 빨리 빼야되" "00날까지 회원들에게 가야되" 라는 기일있는 압박의 얘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KARL지가 빨리 나와야 한다는 얘기 한 사람도 없고, 했어도 저는 안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 불찰로 미처 틀린 부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편집자를 믿었기에 디자인 부분은 생략하고 본문의 글자만 교정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한번 회원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제가 다음 KARL지도 계속하게 된다면 차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약속드립니다.

더불어 6K5BOX 창원지부장님께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11/12월 KARL지를 제작함에 있어서, 금번 연맹의 사태와 관련되어 시일에 쫓기거나 압박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더불어, DS1OLH 유부원 이사님께서는 제가 KARL지 마지막 교정을 보는 시점이었던 11월 11일 수요일에는 사무실 업무가 바쁘셔서 교정에 참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보통 교정하는 날에는 오신다고 하셔도, 제가 굳이 오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돌아오는 29일에 창원 만남의 장(창원정크)를 갈 예정입니다.
그때 만나뵈면, KARL지가 어떻게해서 실수가 벌어졌는지, 제 컴퓨터에 저장된 KARL지의 원본데이터를 열어서 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부장님께 여쭈어 봅니다.
제가 교정과정에서 보지 못한 그림, 그 그림을 보지 못해서 세종대왕님과 이순신장군 동상의 머리가 잘려서 인쇄되었습니다. 누구의 압박도 없었고 누구의 요구도 없었고 단지 제 실수 입니다.

이것이 연맹이 지탄을 받아야 하고, KARL지가 지탄을 받아야 하고, 시간 쪼개서 KARL지 제작에 참여하는 제가 지탄을 받아야 하고,  올리지 말라는 저의 요청을 만류하시고 KARL지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를 미리 아시고 대표해서 사과의 글을 올리신 DS1OLH 유부원 OM께서 저의 실수로 인해서 지탄을 받아야 하는 건인가요?

6K5BOX OM님도 지역의 지부를 운영하시고, 연맹과 본부를 아끼셔서 현 사태에 지탄을 하시는 것 처럼
저 DS1NMA도, 그리고 DS1OLH OM도 KARL지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좋은 KARL지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저도 사람인지라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실수가,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받겠습니다. 하지만 부탁이온데, 금번 연맹 사태와 KARL지와는 결구시키지 말아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워, 2시간이 넘도록, 13번의 수정을 하였습니다.
2시간이 넘도록, 13번의 수정은 금번 연맹사태와 관련된 꿍꿍이가 아님을 더불어 말씀드립니다.
어느 분이 이 늦은 새벽에 피곤한 사람 잠 못자게 꿍꿍이를 부리겠습니까. 저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입니다.

조심스럽게 글을 올리오니, 교정과정에서 저로 인해서 발생한 실수로 KARL지에 그림이 잘못 나온 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S1NMA 박상보 드림.

연맹, 그리고 우리와 관계기관과의 Trade는 성공한 것인가?
작성자: DS1NMA   등록일: 2008-12-15 23:55:52   조회: 448  


아래에 TPMS/RKE의 주파수 공유에 관한 예전의 KARL지에 기고된 내용들을 다시 보고
지난 길을 한번 되짚어보는 뜻에서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적으며, 저는 TPMS/RKE와
433MHz 아마추어용 주파수와의 공용의 찬반여부를 떠나서 중심에서 보고 글을 적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목에 "trade"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난 KARL지의 내용들을 되짚어 보면, 그 과정에 있어서 일종의 "trade"로 표현해도 될 듯 합니다.
미약한 전력을 사용하는 TPMS/RKE가 사용하는 ISM 주파수를 그에 비해 상당한 고출력의
아마추어용과 공유함에 있어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2차 용도로 수혜받는 TPMS/RKE가 
그러한 문제를 감수하고 사용을 하는 대신, 아마추어무선의 활성화에 협력을 하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연맹 및 아마추어무선사와 관계 기관이 일종의 "거래"를 하는 셈이겠지요.

벌써 2005년부터 지금의 2008년까지.. 무려 3년의 기간동안 우리쪽에서 주파수를 공유해주는 덕분에
관계기관에서는 우리 연맹과 아마추어무선사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이것을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trade"라면 적어도 손해나는 장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우유 짜먹던 젖소 한 마리 빌려주었으면,
우유는 못짜더라도 최소한 쌀이라도 키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밭을 갈 황소 한 마리는 담보로 가져와야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란 말이지요.
빗대어 얘기하면, 우리가 주파수를 2차로 사용하도록 빌려주는 대신에, 우리가 그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관계 기관들에게 제대로 요구하고 받아왔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고, 그것이 빈약했다는 결론이 서면
새로운 2009년에는 모자른 부분을 요구하고 받아와야 할 것입니다.

하나 첨언하면, 7MHz 확장 부분은 주파수 공유의 댓가로 보기에는 좀 모자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7MHz의 100kHz 확장에 대해서는 국제기관에서 확장을 하도록 하였고 그에 따른 추세에 맞추어
확장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지요. 즉,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힘이 아닌 외부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라
확장이 되는 만큼, 433MHz 공유에 따른 trade로서의 댓가로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봅니다.

2008년 연말을 맞아, 다시한번 지난 일들을 되짚어 보고
새로운 2009년에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trade에 따른 담보 내지는 댓가를 무엇으로 받아올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새해를 맞이하였음 좋겠습니다. 

DS1NMA 드림.

추신 : 새해에는 433MHz를 쓰는 TPMS를 제 차에 달아볼까 고려중에 있습니다.
         FSK/ASK를 쓰는 TPMS와 아마추어밴드의 FM과 상호간섭 여부를
         계측기를 통한 객관적인 입장이 아닌 (객관적 데이터나 나와 공개됬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유저의 입장으로 고장이 나든 말든 한번 달아볼까 생각중입니다.



전파활용에 경제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작성자: DS1NMA   등록일: 2007-02-16 09:57:29   조회: 410  


DS1NMA입니다.

아래 HL2EJT OM께서 세부 기술적인 좋은 내용으로 반박을 해주셨습니다.
EJT OM께서 반박하신 내용을 잘 살펴보면 결국은 전파를 관리하는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와 그 산하 전파연구소도 결국은 전파의 효율적인 활용보다 경제성을
더욱 고려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시 EJT OM의 글을 첨부하면서 추가적으로 내용을 올려봅니다.

[기술기준 사항에 대한 반박]

   1. 세부사용 용도 : TPMS/RKE 만 사용하기로 한것을 세부기준없이 아무것이나 쓸수 있도록 제한 안둠

: 결국은, TPMS/RKE뿐 아니라 차후 개발될 소출력 무선기기로 명명된 데이터 통신기기는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결국은 사용자가 많은 주파수 대역(GHz대 ISM대역)을 피해 기존에 있는
다른 대역을 허가해줌으로서 절차도 간소화 시키고, 생산단가도 낮추고 생산자 입장에서 일거 양득의 효과를
누리게 해주려는 목표를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산업자원부에서 압박이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2. 점유주파수 대역폭 :  250KHz (국내 전파법규 규정은 8.5KHz 임, 이법을 고칠려고 하는중)

              * 국내 규정을 무시한 이유를 정확히 물을 필요있음, 국내 법을 안지키고 외국제품 규격을 따라줄려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것으로 판단됨

: 외국제품 규격을 따라줄려고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 논리로 짐작해볼수 있겠지요. "수출"입니다. 초고속 인터넷을 비롯하여 新통신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거의 Testbed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국내에서 성공하면 자동적으로 "수출"에 연결되지요. 따라서, 여기서 점유주파수 대역폭 및 다른 규정까지 외국제품의 규격에 맞추고 외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의 기술로 개발되면 "수출"로 이어지므로 그러한 경제적인 계산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짐작해봅니다.

   3. 주파수 허용편차 :  100ppm  (국내 전파법규  7ppm 임, 이법 또한 고칠려고 하는 중)

             *  최근에는 PLL방식을 이용한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으나 오래된 외국제품을 국내에 소진시키기 위해서
                 일부 업체들이 강하게 밀어 붙히고 있는 실정임
             *  국내 전파연구소 기술기준은 -10 ~ 50도 온도에서의 허용편차를 정의하게 되어있으나 현재 고시할려고
                 하는건 외국제품 기준 그대로 -40~125도 에서 100ppm을 적용하려고 하고 있음
             *  외국제품 대부분 국내 기술기준에서 시험한다해도 10~15ppm안쪽에 대부분 들어오는것으로 일부자료
                 에서 확인이 되었으나 전파연구소에서는 국내외 제품에 대한 시험결과와 정확한 근거자료가 없이
              외국 기준을 적용한다는건 문제가 있음, 100ppm 기준으로 하려는 정확한 근거자료를 요구할 필요가 있음

: 이도 마찬가지로 주파수 허용편차까지 외국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데 2번의 이유와 연결됩니다. 그 규격에 맞추어 외국제품을 국내에 소진시키면 외국기업에게 이득이 되고, 또한 국내제품으로 성공해서 수출에 이어지면 우리기업에게도 좋고.. 일거양득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짐작해 봅니다.

결론은, 정보통신부 전파연구소는 전파사용료도 없어서 정부입장에서 금전적으로 큰 득이 되지 않는데다가 (솔직한 이야기로) FM으로도 거의 사용치 않고, 가장 중요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없는 그런 433MHz 대역을 (공용으로) 사용해서 경제적인 파급효과로 이어가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짐작을 해봅니다. 전파의 효율적인 관리를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니까요. 그들의 목적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 입니다만 우리가 사용해야 할 권리를 빼앗기는 것은 반대로 보았을때 좋지 않은 상황이지요. 궁여지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후 개발될 상위 주파수 대역(UWB)은 고속 데이터 통신용으로 정해진 상태이고 ISM밴드는 포화상태인 상황이니까요.

결국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밖에 없겠지요. 그렇지만 "경제성"이라는 녀석에 밀리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지난 2009년 3월 26일 部로 아마추어무선 주파수 중 7MHz 대역이 7.0~7.1MHz에서 7.0~7.2MHz까지 사용이 가능하도록 확장되었다.

하지만, 확장된 주파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 6/29 오전, 제 무전기 추가를 위해 변경허가신청을 위해 서울전파관리소를 다녀왔다.

서류를 미리 준비해서 갔는데, 변경내역에 "7MHz 확장"이라고 기재하여 7MHz의 7.1~7.2MHz 확장을
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담당자분께서 업무편람 공문을 보여주셨는데 그 내용으로는

7MHz 대역을 기존의 7.0~7.1MHz까지를 7.0~7.2MHz로 변경을 위해서는 변경허가와 함께 준공검사를 하도록 적혀있었다.

이유는 기존의 장비들은 7.0~7.1MHz까지 사용하도록 형식검정을 득해있던 장비들이기 때문에
이를 7.2MHz를 사용하기 위하여 확장을 한다면, 준공검사를 득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준공검사란, 무선국을 각 지방 전파관리소를 통해 허가를 받게 되면, 그 무선설비들이 정상적으로 설치되었는지 출력은 허가된 범위 내에서 발생되는지, 스퓨리어스 등으로 주변에 다른 무선국이나 TV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안테나(공중선)에 VSWR 등이 잘 맞는지 등을 검사하는 과정으로 전파진흥원에서 실시하는 검사이다.

이는 모든 무선국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던 준공검사는 1999년 6월 아마추어무선기기의 형식등록제도가 생기면서, 형식등록을 받은 기기에 한해서 무선국을 개국할 때에 준공검사를 면제하여 주기 시작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메이커 아마추어무선기기로 허가를 받을 때에는 준공검사를 받지 않았다.

이는,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 홈페이지에 게시된 "변경신고"와는 매우 다른, 단순하게 변경허가를 득함으로만 7.2MHz까지 적법하게 사용이 가능한 것과 달리 변경허가와 함께 준공검사까지 받아야 적법하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이다.

모든 사람들이 7MHz대역이 확장되면, 그냥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절대로, 적법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적법하게 사용을 하려면,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신규로 HF대역을 허가받는 무선국의 경우에도 해당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위의 경우대로라면 신규로 HF 대역을 허가받는 무선국에도 해당이 된다.
단, 7.2MHz까지 형식검정이 되어있는 무선기기로 허가를 신청하였을 경우에는 준공검사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에 7.2MHz까지 형식검정이 되어 있는 무선기기는 7.2MHz까지 확장이 된 시점 이후로 형식검정을 득한 무선기기일텐데, 본인이 알기로는 7MHz 확장 시점인 2009.03.29 이후에 형식검정을 받고 출시된 기기는 ICOM의 IC-7600 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지금 장터 등에서 거래되고 있는 무선기기로 7.2MHz까지 허가를 득하려면
반드시 준공검사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준공검사를 받지 않으려면 7.0~7.1MHz까지 사용하도록
허가를 내면 준공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되면, 무선국 허가 처리기간 10일 + 준공검사 수수료납부와 검사까지 대충.. 10일 = 20일 소요.
수수료는 변경허가 1국당 4,000원 + 무선국 검사수수료(50W이상 500W미만) 17,000원 = 21,000원

수수료의 경우, 가족 4인이 모두 허가가 되어 있고, 검사를 받는다면

 변경허가 수수료 (4,000원 * 4) = 16,000원
 무선국 검사수수료 (17,000원 * 1) = 17,000원 , 합은 33,000원

이처럼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게 된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 제가 가족국 포함 2국이라 전에 준공검사 받을때 수수료를 2국어치 34,000원 낸 기억이 있는데, 7MHz 확장의 경우는 어떤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만일, 위의 예가 검사가 1국만큼이 아닌 4국이라면 수수료가 어마어마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은
현재로서는 기존 장비로 7MHz를 확장하여 사용하거나 기존 장비로 새로이 HF대역을 7.0~7.2MHz까지 허가신청을 할 경우에는 무선기기의 개조 후, 허가신청을 하고(각 지방 전파관리소), 준공검사(전파진흥원)를 받은 후, 사용을 해야 적법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결국은, 나는 준공검사가 귀찮아서 7MHz 확장 허가신청을 하지 않았다.
솔직한 말로, 저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7MHz가 좁다고 느껴보지는 못하기도 했으며, 대부분 Antenna가 7MHz 밴드폭이 넓지 못해서 튜너 없이는 Matching에 이어 사용이 어려운것도 사실이다.

 



"개발은 미학이다"

나는 이렇게 정의를 해보고 싶다.
그렇다. 내가 최근 IF-100을 만들면서 느낀 것이다.

IF-100을 만들때 그랬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작게 만들수 있을까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하면 최대한 예쁘게 만들수 있을까 까지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IF-100에 "개발은 미학이다"라는 정의를 적용하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내 실력에서는 그렇게 정의를 내려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발이 미학이라면, 지금의 IF-100의 크기보다 더 작게 만들었어야 할 것이다.
PCB Artwork에서도 좀 더 얇은 배선으로 PCB의 크기를 줄였어야 할 것이고
그만큼 바깥 케이스도 더 작게 줄였어야 할 것이다. IC들도 전부 SOIC가 아닌 LQFP 타입의 IC를 써서 아무리 못해도 USB형의 SD 리더기 만큼의 사이즈는 되어야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만족한다. 물론 개발은 끊임없이 이어나갈 것이다.

지금 만든 IF-100.. 80x60mm의 PCB에 제작된 IF-100은 80x60x27mm의 빨간색의 섹시한 케이스에 안착되어 있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그 어떤 물건들보다 더 완벽하고 더 확실하게 동작되고 외관도 절대 허접하지 않음을 자부한다.

물론 IF-100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것을 개량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 IF-100은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영감들을 모아놓은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2006년에 지금의 IF-100의 USB Serial Bridge 회로에 PIC16F84를 이용하여 PC인디케이터를 개발했고 그 PC인디케이터 개발로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만능기판에 PCB Artwork 없이 대충 만든 PC인디케이터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컴퓨터에서 함께 가동되고 있다.

IF-100은 그 USB Serial Bridge 회로에 앞 뒤에 USB 허브와 PTT컨트롤, USB 사운드를 가미시킨 것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IF-100을 만든 것이다.

조만간 나는 PC인디케이터를 다시 만들어 키트로 출시할 예정이다.
드라이버와 이미 공개된 신호전송 프로그램만 쉽게 설치하면 PC의 자원정보(클럭스피드, 메모리, 하드용량, 온도 등)를 LCD에 출력되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물론 여기에도 "개발은 미학이다"의 정의가 적용될 것이다.
이유는.. 외관이 예뻐야 애착을 갖고 오랫동안 사용하게 될테니까.

디자인이 나쁘면 키트던 완제품이던 조금 사용하다 질리게 되어 있다.
디자인이 좋으면 오래도록 놓고 쓰게 마련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명품화 전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KIT의 명품화"... 그것이 나의 코리아키트의 목표라고 할 수 있곘다.